HOME / 커뮤니티 / 정보센터

정보센터

화물 지입차주가 컨테이너 정리? 법원 “사고 책임은 선주사”

노무법인신성 2024.08.23 11:35 조회 146
화물차 지입차주가 운송계약과 다른 업무를 하다가 사고를 당했다면 사실상 선주사(운송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선박을 소유해 용선을 주는 회사)의 지시에 따라 이뤄진 것이므로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선주사·운송사와 지입차주가 사실상 ‘사용종속관계’에 있다는 의미다. 화물업계 복잡한 다단계 운송계약 구조에 경종을 울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21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3단독(서지원 판사)은 화물차 지입차주 A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불승인처분취소 소송에서 지난 14일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1심 결론이 나기까지 1년9개월이 걸렸다.

컨테이너 정리 작업하다 골절, 공단 “계약과 다른 업무 아냐”

사건은 다단계 형태의 운송계약에서 시작됐다. A씨는 2014년 B사와 지입계약을 맺은 뒤 2017년 운송사 C사와 화물운송계약을 체결했다. 문제는 화주사인 D사가 중국에서 수입한 컨테이너를 선주사가 평택항에 내려놓으면서 A씨가 이를 운반하게 되면서 불거졌다. A씨는 2017년 11월 C사의 배차 지시에 따라 평택항에서 천안에 있는 D사로 FR 컨테이너를 운반했다.

그런데 운송을 끝내고 컨테이너 하차 작업을 마무리하고도 일이 끝나지 않았다. A씨는 컨테이너를 쌓아 보관하기 위해 운반한 컨테이너의 벽을 혼자서 접었다. 이를 위해 컨테이너 기둥의 고정핀을 망치로 두드리다가 갑자기 고정핀이 뽑히며 접힌 기둥에 발목이 다쳤다. 이 사고로 발목이 골절되자 A씨는 공단에 요양급여를 신청했다.

쟁점은 컨테이너를 접는 작업이 ‘화물운송계약과 다른 업무’에 해당하는지다. 고용노동부는 ‘계약 내용과 다른 업무 수행 중 발생한 화물자동차 운전자 사고처리 지침’을 통해 사실상 종속관계에 있는 화물차 운전자가 계약 내용과 다른 업무 수행을 지시받았거나 관행적으로 수행한 경우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도록 정하고 있다. 본 업무인 운송이 아닌 추가 작업을 했을 때는 작업하던 사업장의 노동자로 본다는 것이다. A씨는 사고 당시 D사 사업장에 있었다.

공단은 요양급여 신청을 불승인했다. 화물운송계약에 따라 하역 완료 후 비어있는 컨테이너를 접는 작업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공단 지사는 본부에 “컨테이너를 접어서 반납하는 것은 선주 편의를 위한 것으로, 선주의 암묵적 지시가 있었다”는 취지의 의견을 밝혔다. A씨 역시 2202년 2월 소송을 내며 선주사나 운송사의 암묵적 지시나 관행으로 작업하다 다친 것이라고 주장했다.

법원 “운전자가 위험한 작업 할 이유 없다”

법원은 공단 판정을 뒤집고 업무상 재해를 인정했다. A씨가 했던 작업이 계약과 다른 업무이며, 선주사의 지시 또는 관행으로 이뤄진 작업이라고 봤다. 서 판사는 “운송계약은 운송사로부터 지시받은 운송물량을 성실히 운송한다고만 정하고 있을 뿐 (컨테이너 접는) 작업을 원고 업무에 포함하는 취지의 조항을 두고 있지 않다”고 판시했다. 특히 컨테이너는 선주사가 관리한 점을 강조했다.

컨테이너 벽을 접는 데 지게차가 이용되거나 최소 3명이 동시에 힘을 줘야 가능한 부분도 지적했다. 서 판사는 “화물자동차 운전자 혼자 컨테이너 벽을 접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운송료에 컨테이너 벽을 접기 위한 지게차 비용이나 인건비가 포함됐다고 볼 자료가 없다”고 꼬집었다. 실제 화물차 기사의 추가 작업을 방지하기 위해 국토교통부는 2019년 12월 고시를 통해 ‘컨테이너 벽면을 접거나 펴는 작업을 차주가 수행해서는 안 된다’고 정했다.

그런데도 A씨가 추가 작업을 한 배경에는 선주사·화주사의 암묵적 지시가 있었다고 법원은 판단했다. 화주사는 컨테이너 정리 작업은 운전자가 알아서 한다는 내용의 확인서를 공단에 제출했다. 서 판사는 “화물차 운전자가 사업주의 묵시적인 지시나 관행이 없었다면 작업에 상당한 위험성이 있는 작업을 할 이유가 없다”며 “선주사는 직접 컨테이너 검수 작업을 했고 벽이 접혀 있는지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선주사가 지입차주 작업을 묵인하거나 지시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은 2021년 4월 평택항에서 컨테이너에 깔려 숨진 고 이선호(사고 당시 23세)씨 사고와 닮아있다. 이선호씨는 평택항 내 FR 컨테이너에서 화물 고정용 나무를 제거하던 중 넘어진 한쪽 벽체에 깔려 숨졌다. 원청인 평택항 관리업체 ‘동방’의 평택지사장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지난해 5월 1심과 같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동방 직원들과 하청업체 직원도 금고형이 선고됐다. 당시 선주사는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법조계는 이번 판결이 실질적인 사업주에게 산재보상 책임을 지우는 계기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A씨를 대리한 정병민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는 “그동안 관행적으로 선주사나 화주사가 책임을 지지 않았던 컨테이너 정리 작업과 관련해 최종적인 관리 주체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판결”이라며 “고 이선호씨도 선주사가 본연이 처리해야 할 작업을 하청에 떠넘기다 생긴 문제였다. A씨 사건에서는 선주사의 책임이 인정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